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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스토리

'우리 회사, 30일 뒤 망합니다' — 5조 달러 만든 젠슨 황이 33년째 하는 말

by 박Info 2026. 7. 10.

 

2025년 10월 29일, 엔비디아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시가총액 5조 달러를 찍었다. 포브스와 CNBC가 나란히 전한 이 기록은, 애플도 마이크로소프트도 못 밟아본 선이었다. 그 회사를 만든 남자는 그맘때 팟캐스트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나는 '30일 뒤면 망한다'는 그 말을 33년째 하고 있다."

세계에서 제일 비싼 회사의 창업자가, 왜 33년째 망할 걱정을 입에 달고 살까. 그 답을 알려면 이 회사가 실제로 몇 번이나 죽음의 문턱까지 갔는지부터 봐야 한다. 젠슨 황(Jensen Huang)의 이야기다. 널리 회자되는 일화가 많은 인물이라, 이번엔 확인되는 사실과 흐릿한 전설을 갈라가며 따라가 본다.

아홉 살, 혼자 미국으로 보내진 아이

젠슨 황은 1963년 대만에서 태어났다(출생지는 타이베이라는 자료와 타이난이라는 자료가 엇갈린다). 아홉 살 무렵 형과 함께 미국 워싱턴주 터코마의 친척 집으로 보내졌다. 부모는 나중에 합류했다. 컴퓨터역사박물관과 위키피디아 기록을 보면, 그는 두 학년을 월반해 열여섯에 고등학교를 마쳤고, 오리건주립대에서 전기공학 학사, 스탠퍼드에서 석사를 받았다.

돈은 일찍부터 몸으로 벌었다. 열다섯 살 무렵 그의 첫 일자리는 패밀리 레스토랑 데니스(Denny's)였다. 접시닦이로 시작해 테이블을 치우고 서빙까지 했다. 이 대목이 흥미로운 건, 훗날 그가 이 시절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2024년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인터뷰에서 황은 일하는 방식을 설명하며 주방 용어 '미즈 앙 플라스(mise en place)'를 꺼냈다. 재료를 미리 제자리에 정돈해두는 그 습관 말이다. 접시 닦던 식당의 규율이 CEO의 언어로 남은 셈이다.

대학을 마친 뒤엔 반도체 회사 AMD와 LSI 로직에서 칩 설계를 익혔다. 창업의 밑천은 이때 쌓였다.

데니스 구석 자리에서 시작된 회사

1993년 4월 5일, 서른 살의 황은 동료 둘과 회사를 세운다. 크리스 말라코스키, 커티스 프리엠. 세 사람이 아이디어를 굴린 장소가 하필 또 데니스였다. 캘리포니아 이스트 산호세 베리에사 로드의 그 매장. 엔비디아 공식 블로그에 따르면 지금 그 자리엔 '1조 달러 회사가 태어난 부스'라는 명판이 붙어 있다. 2023년 9월에 헌정됐다.

창업 자금을 두고는 숫자가 엇갈린다. 위키피디아는 회사를 법적으로 세우는 데 든 자본금이 딱 600달러였다고 적는다. 세 사람이 200달러씩 냈다. 반면 '4만 달러로 시작했다'는 얘기도 흔한데, 이건 굴러가는 운영자금 쪽 이야기다. 어느 쪽이든, 지금의 5조 달러와는 까마득한 출발점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 하드웨어가 없습니다"

시작은 화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첫 제품부터 방향이 어긋났다.

당시 3D 그래픽을 그리는 방식을 두고 엔비디아는 사각형(쿼드) 기반에 걸었다. 1995년 나온 첫 칩 NV1이 그 결과물이다. 그런데 업계가 삼각형으로 굳어갔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삼각형 기반 표준(Direct3D)을 밀면서, 사각형에 회사를 건 엔비디아만 외딴섬이 됐다.

진짜 위기는 세가와 얽히며 왔다. 세가는 새 게임기 드림캐스트에 넣을 그래픽 칩을 엔비디아에 맡겼는데, 엔비디아가 필요한 스펙을 도저히 못 맞췄다. 여기서 황의 선택이 인상적이다. 그는 세가에 솔직히 털어놨다. 쓸 만한 하드웨어가 없다고. 그러면서도 회사가 당장 망하지 않게, 어그러진 계약의 대금 500만 달러를 그냥 전액 달라고 부탁했다. 톰스하드웨어가 전한 황 본인의 회고는 이렇다. "그게 우리가 가진 전부였다. 그의 이해와 관대함이 우리에게 6개월의 생명을 줬다." 세가 오브 아메리카의 CEO 이리마지리 쇼이치로가 이 돈을 투자로 돌려 회사를 살렸다.

경쟁사에 손을 벌린 게 아니라, 실패한 거래 상대에게 "당신 돈이 없으면 우리 다음 주에 파산한다"고 말한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이 엔비디아 역사에서 가장 아슬아슬하고, 동시에 가장 이 사람다운 순간 같다.

통장에 한 달치, 그리고 사훈이 된 공포

살아남았다고 끝이 아니었다. 삼각형 표준을 따라잡으려 엔비디아는 인력을 크게 잘랐다. 100명 안팎에서 40명 정도로. 남은 돈을 전부 삼각형 기반의 새 칩 RIVA 128에 걸었다.

1997년 8월, 급여로 딱 한 달치가 남았을 때 RIVA 128이 나왔다. 넉 달 만에 약 100만 개가 팔렸다. 회사는 그 돈으로 숨을 이었고, 2년 뒤 상장의 발판까지 놨다.

엔비디아의 그 유명한 사내 구호 "우리는 30일 뒤면 망한다"가 굳어진 게 이 무렵이다. 흔히 '이후 황이 모든 발표를 이 말로 열었다'고 전해지지만, 그건 부풀려진 각색에 가깝다. 다만 이 문구가 회사 안에 오래 박힌 정신이 된 것만은 여러 매체가 확인한다. 진짜로 30일 뒤 월급이 끊길 뻔했던 회사가, 그 공포를 아예 정체성으로 삼은 것이다.

아무도 안 믿던 도박, CUDA

여기까지는 '망할 뻔하다 살아난 벤처' 이야기다. 판을 바꾼 진짜 도박은 그다음이었다.

1999년, 엔비디아는 지포스 256을 내놓으며 이걸 '세계 최초의 GPU'라고 이름 붙여 팔았다. 사실 'GPU'라는 말 자체를 엔비디아가 마케팅으로 지어낸 것에 가깝지만, 어쨌든 그래픽 칩 시장의 강자로 올라선다.

문제는 2006년 이후다. 엔비디아는 CUDA라는 걸 내놓는다. 그래픽 칩을 게임 말고 과학 계산 같은 아무 작업에나 쓸 수 있게 열어주는 소프트웨어였다. 그걸 원하는 사람이 그때는 거의 없었다. 컴퓨터위클리는 훗날 이 결정을 대놓고 '수십억 달러짜리 도박'이라 불렀다. 시장은 회의적이었다. 게임 칩이나 팔 것이지 왜 돈 안 되는 데 힘을 쓰냐는 거였다.

그 도박이 맞아떨어진 건 2012년이었다. 이미지 인식 대회에서 우승한 신경망 '알렉스넷'이 엔비디아 GPU로 학습되면서, GPU가 AI의 심장이라는 게 드러났다. 딥러닝 시대가 열렸고, GPU를 아무 계산에나 쓰게 미리 열어둔 회사는 엔비디아뿐이었다. 10년간 손가락질 받던 준비가, 그제야 세상에서 제일 귀한 물건이 됐다.

5조 달러, 그리고 가죽자켓

그다음은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생성형 AI 붐이 터지자 엔비디아 칩은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이 됐다. 위키피디아·브리태니커·CNBC가 정리한 시총 궤적은 이렇다. 2023년 6월 1조 달러, 2024년 6월 3조 달러로 반도체 기업 최초, 그해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을 잠깐씩 제치고 세계 1위, 그리고 2025년 10월 5조 달러. 회계연도 2024 매출만 609억 달러로, 1년 새 126% 뛰었다.

접시 닦던 소년이 세운 회사가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정작 그는 캐릭터가 소박한 편이다. 늘 검은 티셔츠에 검은 가죽자켓. 패션 전문가들은 그 자켓을 대부분 톰 포드 제품으로 보는데, 포춘에 따르면 한 벌에 5천 달러에서 1만 달러를 넘는 것도 있다. 어떤 건 8,990달러짜리 악어 무늬라고 톰스하드웨어가 콕 집기도 했다. 2014년, 주가가 100달러를 넘으면 뭘 하겠냐는 물음에 그는 회사 로고 문신을 새기겠다 했고 진짜로 새겼다. 포춘 인터뷰에서 그때를 "애기처럼 울었다"고 회고했다. 세계에서 제일 무서운 반도체 회사 CEO의 가장 인간적인 장면이다.

그늘도 있다

성공 서사만 칠하면 반쪽이다. 지금 엔비디아엔 만만찮은 그림자도 있다.

하나는 중국이다. 미국이 첨단 AI 칩의 중국 수출을 조인 탓에, 한때 큰 시장이던 중국에서 엔비디아 점유율이 사실상 0%까지 떨어졌다. 2025년 CNBC 인터뷰에서 황은 미국의 수출 규제가 "이미 상당 부분 역효과를 냈다"고 대놓고 불만을 드러냈다. 자국 기업을 지키려던 규제가 오히려 중국 토종 칩을 키웠다는 얘기다.

다른 하나는 'AI 버블' 논쟁이다. 2025년 들어 시장 한쪽에선 AI 대기업들이 서로 얽혀 투자하며 주가를 부풀린다는 우려가 커졌다. 2008년 서브프라임 붕괴를 공매도로 맞힌 마이클 버리가 엔비디아 하락에 베팅하며 회계 방식에 의문을 던졌고,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MIT의 대런 아제모을루 같은 학자는 AI 과잉투자를 경고했다. 5조 달러라는 숫자가 진짜 실적인지, 부푼 기대인지는 아직 결판나지 않았다.

그래도 "30일 뒤 망한다"

이 모든 걸 다 이룬 지금도 황은 안 변했다. 포춘이 2025년 12월 전한 인터뷰에서 그는 여전히 일주일에 7일, 추수감사절에도 크리스마스에도 쉬지 않고 새벽 4시부터 일한다고 했다. "매일. 매일매일. 단 하루도 거른 적 없다"고. 파산 공포는 여태 그를 따라다닌다.

처음엔 이게 성공한 부자의 엄살처럼 들렸다. 그런데 이 회사가 실제로 첫 제품에서 어긋나고, 통장이 한 달치까지 말랐고, 10년 도박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나면 얘기가 다르다. 그 공포가 진짜였기에 30일이라는 말도 진짜인 거다. 아홉 살에 혼자 태평양을 건너 접시부터 닦은 사람이라면, 잘나갈 때 방심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몸으로 안다. 어쩌면 그 감각을 한 번도 안 놓은 게, 이 회사를 다섯 번쯤 죽을 뻔한 자리에서 5조 달러까지 끌고 온 힘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