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위치를 쥐고 마리오를 움직이는 그 회사가, 원래는 손으로 화투를 접어 팔던 교토 뒷골목 가게였다. 창업이 1889년. 올해로 137년째다. 전화도 자동차도 흔치 않던 시절에 시작한 카드 가게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 회사가 됐을까.
이 이야기엔 유명한 일화가 잔뜩 붙어 있다. "야쿠자가 닌텐도의 최대 고객이었다"거나 "한때 러브호텔을 운영했다"는 식의. 재밌긴 한데, 파보면 상당수가 부풀려졌거나 근거가 약하다. 확인되는 것과 아닌 것을 갈라가며, 화투에서 마리오까지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따라가 보자.
1889년, 교토의 화투 가게에서 시작됐다
닌텐도는 1889년 9월 23일, 장인 야마우치 후사지로가 교토 시모교구에 연 가게에서 출발했다. 상호는 '닌텐도 코파이'. 만든 물건은 하나후다(花札), 우리말로 화투다. 48장짜리 카드에 열두 달을 꽃으로 그려 넣은, 지금 우리가 아는 그 화투 맞다. 손으로 한 장씩 만들었다.
왜 하필 그림 카드였나. 여기엔 도박의 그림자가 깔려 있다. 일본은 에도 시대부터 서양식 숫자 카드를 도박에 쓴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금지했는데,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숫자를 빼고 그림만 그린 새 카드를 만들어 단속을 피했다. 화투는 그 숨바꼭질의 산물이었다. 그러다 1886년 메이지 정부가 화투를 합법화하자, 그 틈을 파고들어 카드를 만들어 판 곳이 닌텐도였다.
화투와 도박, 그리고 '야쿠자'라는 이름
화투가 도박과 얽힌 건 사실이다. 재밌는 건 '야쿠자'라는 단어 자체가 화투 도박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화투로 하는 오이초카부라는 게임에서 8·9·3 세 장을 잡으면 합이 20, 끝자리가 0이라 아무 점수도 안 되는 '꽝' 패가 된다. 이 8(야)·9(쿠)·3(자)가 '쓸모없는 것'을 뜻하는 말로 굳어져 야쿠자가 됐다. 도박판의 밑바닥 정서가 단어에 그대로 배어 있는 셈이다.
경쟁사들이 '도박 도구'라는 낙인을 꺼려 화투에서 손을 뗄 때, 닌텐도는 오히려 그 자리를 채우며 일본 최대 화투 제조사로 컸다. 여기까진 여러 사료가 일치한다.
그런데 자주 따라붙는 "야쿠자가 닌텐도의 최대 고객이었다"는 말은 근거가 약하다. 화투가 도박판에서 쓰인 건 맞지만, 야쿠자가 최대 고객이었다는 '단정'은 게임 블로그들이 서로 베껴 쓰며 커진 이야기에 가깝다. 야마우치 가문의 발언이나 닌텐도의 판매 기록 같은 1차 근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화투와 도박의 인연은 진짜지만, '최대 고객' 딱지는 검증되지 않은 양념이라고 보면 된다.
택시, 러브호텔, 안 풀린 사업들
시간을 건너뛰어 1949년. 창업자의 증손자인 야마우치 히로시가 스물한 살에 3대 사장이 된다(1949년 4월 25일 취임, 2002년까지 재임). 흔히 "1950년, 스물셋에 취임"이라고 적힌 글이 많은데, 연도도 나이도 틀렸다. 할아버지가 쓰러지면서 학생이던 그가 급히 회사를 물려받았다.
화투만으로는 회사의 미래가 안 보였던 이 젊은 사장은 1960년대에 별의별 사업에 손을 댄다. 이 대목에서 유명 일화들이 쏟아진다. 확인되는 것부터 보자. 택시 회사는 진짜다. '다이야 교통'이라는 이름으로 1960년 교토에서 운영했고(다이야는 다이아몬드라는 뜻), 노조와의 비용 문제로 1969년 메이테츠 그룹에 팔아넘겼다. 이 밖에 인스턴트 밥, 볼펜, 진공청소기, 레고를 닮은 블록 완구까지 이것저것 벌였다가 대부분 접었다.
가장 유명한 '러브호텔' 이야기는 어떨까. 시간당으로 방을 빌려주는 러브호텔을 야마우치가 운영했다는 얘기인데, 이건 확정된 사실이 아니다. 이 일화의 출처를 따라가면 1993년에 나온 데이비드 셰프의 책 한 권으로 좁혀진다. 이후 닌텐도 역사 연구자 야마자키 이사오와 한 일본 블로거가 196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 닌텐도의 증권보고서와 당대 기록을 뒤졌지만, 러브호텔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워낙 재밌으니 계속 회자되지만, 근거는 책 한 권뿐인 '설'로 남아 있다.
정리하면 이렇다. 1960년대의 닌텐도는 살길을 찾아 온갖 사업을 들쑤셨고 대부분 실패했다. 택시는 실제였고, 러브호텔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방황을 끝낸 건 뜻밖에도 화투 공장 안에 있었다.
화투 공장 기계를 고치던 사람이 만든 장난감
1965년, 닌텐도는 도시샤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청년 요코이 군페이를 뽑는다. 맡은 일은 거창하지 않았다. 화투 카드를 찍어내는 조립 라인 기계를 정비하는 것. 그런데 이 사람이 심심풀이로 만든 물건 하나가 회사의 방향을 바꾼다.
1966년, 야마우치가 화투 공장을 둘러보다 요코이가 혼자 재미 삼아 만든 장난감을 봤다. 손잡이를 쥐었다 폈다 하면 집게가 쭉 늘어나 멀리 있는 물건을 집는 물건이었다. 야마우치는 그 자리에서 이걸 크리스마스 상품으로 개발하라고 지시한다. 그렇게 나온 게 울트라핸드다. 결과는 대박. 일본에서만 약 120만 개가 팔렸다.
화투 회사가 장난감으로도 돈이 된다는 걸 확인한 순간이었다. 요코이는 승진했고, 닌텐도 안에 완구·게임을 만드는 개발 조직이 꾸려진다. 화투에서 장난감으로, 첫 번째 큰 방향 전환이 이렇게 시작됐다.

동키콩, 그리고 마리오
장난감으로 몸을 푼 닌텐도는 곧 전자오락으로 넘어간다. 1977년 첫 게임기 '컬러 TV 게임'을 냈고(초기 모델은 마그나복스의 기술을 빌려 썼다), 1981년엔 아케이드 게임 동키콩을 내놓는다. 이 게임을 디자인한 스물여덟 살 신입이 훗날 마리오의 아버지가 되는 미야모토 시게루다. 동키콩은 닌텐도의 첫 국제적 히트가 됐다.
진짜 도약은 가정용 게임기였다. 1983년 7월 15일, 닌텐도는 14,800엔짜리 게임기 패미컴을 일본에 내놓는다. 출시 두 달 만에 50만 대가 팔렸다. 이 패미컴을 미국식으로 다시 디자인한 것이 1985년 북미에 상륙한 NES다. 1985년 10월 뉴욕에서 시험 판매를 시작했는데, 당시 미국 게임 시장은 몇 년 전 대붕괴로 초토화된 상태였다. 그 얼어붙은 시장을 다시 살려낸 게 닌텐도였다.
불을 지핀 건 역시 마리오다. 1985년 9월 일본에서 나온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출시 첫 달에만 120만 장이 팔렸고, 넉 달 만에 300만 장에 육박했다. 패미컴과 NES는 이후 20년에 걸쳐 전 세계에서 6,000만 대 넘게(약 6,190만 대) 팔려나간다. 화투 가게가 세계 거실을 점령한 것이다.

화투에서 마리오까지, 137년
닌텐도의 역사를 관통하는 건 하나의 고집이다. "사람을 재밌게 하는 물건이면 뭐든 판다." 그 물건이 손으로 접은 화투든, 집게 장난감이든, 배관공이 버섯을 밟는 게임이든 상관없었다. 도박판의 카드에서 출발해, 온갖 헛발질을 거쳐, 결국 전 세계 아이들의 장난감 회사가 됐다.
그러니 다음에 누가 "닌텐도가 옛날엔 야쿠자한테 화투 팔던 회사"라고 하면, 절반만 맞다고 답하면 되겠다. 화투를 판 건 맞지만 야쿠자 최대 고객설도, 러브호텔설도 확인된 얘기는 아니라고. 진짜 반전은 그런 자극적인 소문이 아니라, 화투 공장 기계를 고치던 사람이 만든 장난감 하나에 있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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