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4월 어느 날, 잘 오르던 종목 여덟 개가 갑자기 동시에 무너졌다. 다우데이타, 삼천리, 서울가스… 며칠 연속 하한가. SG증권 창구에서 매도 물량이 쏟아지며 벌어진 일이라 'SG발 주가폭락 사태'로 불린다. 검찰이 기소하며 산정한 부당이득만 7,305억 원. 언론은 "단군 이래 최대 주가조작"이라고 했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텅 빈 맛집 앞에 알바를 잔뜩 세워 '여기 웨이팅 30분'인 것처럼 줄을 만든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오, 맛집인가 봐" 하고 몰려든다. 정작 주인 일당은 그 틈에 뒷문으로 빠진다. 딱 그 짓을 주식으로 벌인 거다.
근데 주가조작이 정확히 뭘까. 누가, 어떻게, 무슨 수로 남의 돈을 가져가는 걸까. 하나씩 물어봤다.
주가조작? 그게 뭔데
"주가조작, 그게 대체 뭔데?"
원리 자체는 허무할 만큼 단순하다. 싸게 사둔 주식을 비싸게 떠넘기는 거다. 문제는 '비싸게' 만드는 과정을 인위적으로 조작한다는 것.
가장 흔한 그림이 펌프 앤 덤프(pump and dump). 세력이 어떤 종목을 미리 쫙 사 모은다. 그다음 "이거 곧 터진다"고 바람을 넣어 개미를 끌어들인다. 사람이 몰려 주가가 확 뛰면? 꼭대기에서 조용히 다 팔고 빠진다. 남는 건 상투 잡은 개미들.

바람 넣는 방법은 여러 갈래다. 하나는 자기들끼리 짜고 사고파는 것(통정매매·가장매매). 당근마켓에서 내가 팔 물건을 내 부계정으로 샀다 팔았다 하는 셈이다. 옆에서 보면 '이 매물 인기 폭발'처럼 보인다. 또 하나는 살 생각도 없으면서 매수 주문만 잔뜩 걸어 사려는 사람이 많은 척하는 것(허수주문). 아까 그 '맛집 앞 가짜 줄'이 바로 이거다. 남들이 낚여 들어오면 슬그머니 주문을 뺀다. 여기에 근거 없는 호재 소문까지 얹는다. 우리 자본시장법 176조가 이걸 전부 '시세조종'으로 묶어 금지한다.
근데 그게 어떻게 가능해?
"말이 쉽지, 실제로 그게 어떻게 굴러가?"
크게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요즘 부쩍 는 리딩방·핀플루언서 방식. 유튜브나 단톡방에서 유명세 좀 있는 사람이 종목을 추천하기 직전에, 자기가 먼저 그 주식을 몰래 사둔다. 그리고 "여기 좋다"고 밀어준다. 구독자들이 우르르 따라 사서 주가가 뜨면 자기 물량을 슬쩍 판다. 쉽게 말해 '내가 추천해서 오를 주식을, 추천하기 전에 내가 먼저 사둔다'는 것. 추천으로 얻은 신뢰를 남몰래 미리 현금화하는 짓이다. 이걸 선행매매라고 한다. 55만 구독 유튜브를 굴리던 '슈퍼개미' 김정환이 딱 이 방식으로 자기가 들고 있던 다섯 종목을 띄운 뒤 팔아 59억을 챙겼고, 대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3억이 확정됐다.
다른 하나는 조직적인 작전세력. 이쪽은 역할이 딱딱 나뉜 사기단을 떠올리면 된다. 한 명은 계좌 수십 개로 물량을 잘게 쪼개 감시망을 피하고, 한 명은 자기들끼리 주식을 수만 번 주고받아 '거래 활발' 간판을 세운다. 또 한 명은 체결할 생각도 없는 허수 매수로 사겠다는 사람이 줄 섰다는 그림을 그리고, 마감 직전 종가를 살짝 띄워 '오늘도 잘나간 종목'처럼 마무리한다. 이 짓을 몇 달간 반복해 주가를 야금야금 끌어올리면, 차트만 보고 들어온 개미들이 알아서 물린다.
공통점은 하나다. 실제 가치가 아니라 '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를 판다. 실제로 계좌를 어떻게 트고 어떤 대본을 쓰는지 같은 실행 디테일은 여기서 다루지 않는다. 그 자체가 범죄니까.
그럼 안 걸려? 요즘은?
"이런 거 요즘도 있어? 안 잡혀?"
잡힌다. 다만 그물이 여러 겹이다. 먼저 한국거래소가 이상한 거래를 자동으로 걸러낸다. 수상하면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과 금융감독원이 파고, 증권선물위원회가 검토해 검찰(주로 서울남부지검)로 넘긴다. 급하고 중대한 건은 중간 단계를 건너뛰고 검찰에 바로 통보하는 '패스트트랙'도 있다.
처벌도 세졌다. 시세조종은 기본이 1년 이상 징역, 또는 부당이득의 4배에서 6배 벌금이다. 부당이득이 50억 원을 넘으면 무기징역까지 갈 수 있다. 여기에 2024년부터는 부당이득의 두 배를 과징금으로 물리는 제도가 생겼고, 2025년 4월부터는 조작에 쓴 계좌를 최장 1년간 얼려버리는 '지급정지', 상장사 임원 자리를 못 맡게 하는 제재까지 도입됐다. 금융위·금감원·거래소는 2025년 7월 아예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을 꾸렸고, 두 달 뒤 첫 대형 사건을 내놨다. 종합병원과 학원을 운영하는 재력가에 전직 금융맨까지 낀 작전세력이 1년 9개월간 약 1,000억을 굴려 특정 종목 주가를 두 배로 조작한 건인데, 이때 계좌 지급정지가 처음으로 실제 집행됐다.
그런데 처벌이 늘 깔끔하게 떨어지진 않는다. 앞서 나온 라덕연 사태를 보자. 1심을 맡은 서울남부지법은 징역 25년에 벌금 1,465억이라는 중형을 때렸다. 그런데 2심에서 CFD가 발목을 잡았다. CFD(차액결제거래)는 주식을 진짜로 사고파는 게 아니라, 오를지 내릴지에 돈만 거는 일종의 내기 상품이다. 실제 주식은 손에 없이 오른 만큼, 내린 만큼 차액만 주고받는다. 라덕연 측은 '이건 진짜 매매가 아니니 시세조종도 아니다'라고 주장했고, 2심은 이를 받아들여 유죄를 3분의 1 수준으로 줄이고 징역 8년으로 확 깎았다. 이걸 2026년 5월 대법원이 다시 뒤집었다. 정문이 아니라 옆문으로 들어왔어도 주가를 밀어 올린 건 똑같다며, 장외 파생 주문도 시세조종이 맞다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새로운 수법이 나올 때마다 법이 이걸 따라잡느라 몇 년씩 법정 공방이 이어진다는 얘기다.
그래서 난 뭘 조심해?
"그래서 나는 뭘 조심하면 되는데?"
폭로로 끝내면 재미없다. 개미 입장에서 '이 신호 보이면 일단 의심'인 것들을 추리면 이렇다.
- 단톡방·리딩방·유튜브에서 "며칠 안에 급등한다"며 콕 집어주는 종목. 추천하는 사람이 이미 그 주식을 들고 있다면, 당신은 그의 출구일 수 있다.
- 회사에 이렇다 할 호재도 없는데 거래량만 갑자기 폭발하며 튀어 오르는 종목.
- "나만 아는 정보", "여기 작전 들어간다" 같은 말. 진짜 내부정보라면 그걸 당신에게 공짜로 흘릴 이유가 없다.
- 평소 거래가 뜸한 종목인데 유독 특정 가격대에 매수 주문이 성벽처럼 두껍게 쌓여 있는 경우. '여기 밑으로는 안 떨어진다'는 착시를 주려고 세운 가짜 방벽일 때가 많다(앞서 나온 허수주문의 꼬리다).
당했거나 낌새가 이상하면 신고할 곳이 있다. 금융감독원 증권불공정거래신고센터(fss.or.kr)와 한국거래소 불공정거래신고센터(stockwatch.krx.co.kr). 포상금 제도도 운영한다.
정리하면 이렇다. 주가조작은 대단한 마법이 아니라, '오를 것 같은 분위기'를 돈 주고 연출한 뒤 속아 들어온 사람에게 물량을 떠넘기는 폭탄 돌리기다. 음악이 멈추는 순간, 그러니까 세력이 팔고 빠지는 순간 폭탄을 쥔 쪽이 터진다. 구조를 알면, 최소한 남의 출구 전략에 내 돈을 보태는 일은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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